신촌에서 인턴을 하던 시절 처음으로 근무를 시작했던 과가 재활의학과였다. 당시 재활의학과 레지던트 1년차 한 분이 있었는데 그 분이 당직인 밤마다 응급 상황이 유독 잦았다. 그 선생님과 같은 날에 당직서는 간호사들은 그 날 당직 레지던트의 이름을 확인하고는 지극히 인간적인 불만을 살포시 토로하였다.
그러던 어느 날 한 간호사가 그 레지던트에게 선생님만 당직 서는 날이면 왜 이렇게 조용할 날이 없냐고 농담반 진담반 어투로 말을 걸었다. 레지던트는 한숨을 깊게 한 번 쉬고는 바닥으로 시선을 떨구며 대답했다, "제가 크게 될건가봐요"라고.
인턴과 군대, 그리고 레지던트까지 모두 마친 입장에서 다시 돌아보았다. 나 자신도 레지던트 시절 갑작스러운 응급이나 중환에 대해서 주치의로써 할 수 있는 일들은 최선을 다해서 해왔다고 자부한다. 심지어 그 순간들을 잘 넘기고 나면 나 자신이 성장한 듯한 느낌까지도 조금 받았다.
하지만 의료진이라고 해서 병원 안에서만 영원히 살진 않는다. 병원도 결국 더 큰 이 세상, 병원 안의 삶도 더 큰 인생이란 굴레 안에서 존재한다. 그런 더 넓은 세상과 인생 속을 방황하다보니 전공의 시절 밤샘 당직 때 맞이하는 여러 응급상황들보다 더 많은 종류의 고난들이 닥쳤다. 고난이 지닌 강도와 성격은 전혀 다른 것이었지만, 크게는 병원 시절 힘든 것처럼 고통스럽지 않은 것이 없었다.
그런데 레지던트 때처럼 닥쳐온 응급상황들처럼 병원 밖 세상과 인생을 살며 마주치는 고난들로 내 자신이 성장한다는 느낌을 위시한 희망적인 생각을 전혀 가질 수가 없었다. 똑같이 힘든데 이런 대하는 마음가짐의 차이는 어디서 비롯된걸까.
한 가지 스쳐지나가는 가능성이 있다면, 출구 내지 끝이 있는지 여부가 아니었을까. 레지던트 시절은 수련하는 분과에 따라 3년 또는 4년의 시간을 거친다. 정말 힘들고 고된 시간인만큼 과정을 거치는 중엔 30년이나 40년처럼 느껴질 수도 있다. 하지만 평생 의사로 활동할 기간을 생각하면 그 기간이 차지하는 시간적 비중은 결코 크다고 할 수는 없다.
이로 미루어볼 때 결국 지금 현재가 아무리 힘들어도 3-4년만 지나면 어두운 터널을 벗어나 끝을 맞이하고 결국 지금 처지에서 해방될 수 있다는 희망이 그 당시에는 컸던 것 같다. 이전에 어디선가 들은 마라톤 선수의 "저 전봇대까지는 뛸 수 있어" 같은 심정이라고도 볼 수 있을까.
하지만 병원 밖 세상과 인생을 살며 닥치는 고난들의 출구는 그저 죽음 이외엔 없다. 죽어버리면 감각과 의식이 사라지고 세상과 인생의 물리적인 고난들은 의미가 없어진다.
목격담이나 증언이란게 존재하지 않는 죽음이란 체험과 그 이후의 순간들, 그리고 절대로 미리 알 수 없다는 근본적인 한계에서 비롯되는 미지에 대한 두려움. 이것들로 인해 인생 고난의 끝이 죽음이란 사실이 머리로는 이해가지만 가슴으로 순순히 인정하기가 어렵고 출구가 없다고 여기는 건 아닐까.
최근에 기대하지 말고 기대지 말자는 다짐을 되뇌이며 정신적으로 제대로 자립을 해서 의존하지 않는 내 자신이 되려 노력하고 있다. 과연 이런 요사이의 깨달음이 죽음이 인생이란 고난의 끝이란 무거운 진실을 받아들이는데도 과연 도움이 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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